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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또 하나의 약속


20140208



딱히 더 맞는 표현이 없을 것 같은, '계란으로 바위 치는' 이야기. 사실 꼭 보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을 다룬 영화인지 알아서 그랬고, 그렇기에 메시지를 강조하다가 영화적 작품성이 허술하다면 여러 가지로 안타까움이 클 거 같아서 지레 피했다. 영화를 단진 의무적으로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돌아가는 형국이 참 치졸했다. '또 하나의 가족'에서 '또 하나의 약속'으로 제목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사정, 개봉관을 잡지 못하는 난관을 겪는 상황이 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바꿨다. 그러길 잘했다. 

영화의 소재인 삼성반도체에 다니다 백혈병에 걸린 이들의 이야기는 전부터 알고 있었다. 정기적으로 받아 보는 소식지 중에서 '반올림(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의 활동을 읽은 적 있다. 삼성에서 백혈병과 희소병으로 100명 넘게 죽은 건 믿기 어려운 건 사실이고, 노사관계 아닌 '또 하나의 가족'을 주장하며 노조 없는 완벽(?)을 꿈꾸는 것도 그렇다. 어떻게 그게 자랑이지? 그거야말로 비민주적 시스템이라는 증거 아닌가? 착각은 삼성 안에서만 심각한 게 아니다. 밖에서도 삼성의 '또 다른 가족'이라 믿는 이들은 많다.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는 기업이라는 둥, 삼성이 망하면 줄줄이 망할 거라는 둥 그들이 장악해버린 우리 사회의 견고한 지반과 질서가 놀라울 정도이다. 그 속에서 '꿈틀'대기라고 해보려 가전제품, 전자 기기 안 사고 이마트도 안 가며 나름 삼성 불매를 실천하지만, 나 역시 삼성의 지반을 떠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라도 하는 게 그나마 인식하는만큼의 태도라고 변명하는 거다. 순박한 가족의 이야기를 보며 다시 돌아볼 수밖에 없었던 부분이다. 

근데 정말 영화 한 편이 무섭기라고 했던 것일까? 상영관을 내주지 않는 롯데시네마는 또 뭐지? 나도 보기는 했고 비교하자는 건 아니지만, 생각보다 훨씬 별로였던 <겨울 왕국>이 본국을 제외하고 세계 최다 관객을 기록하는 상황에서 상영관 배정조차 힘겨웠던 <또 하나의 약속>의 분투 소식에 장엄하게 펼쳐진 울산바위가 눈에 어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