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림

청마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청마 유치환(1908-1967)

고독은 욕되지 않으다
견디는 이의 값진 영광.
겨울의 숲으로 오니
그렇게 요조(窈窕)ㅎ던 빛깔도
설레이던 몸짓들도
깡그리 거두어 간 기술사(奇術師)의 모자(帽子).

앙상한 공허만이
먼 한천 끝까지 잇닿아 있어
차라리
마음 고독한 자의 거닐기에 좋아라.
진실로 참되고 옳음이
죽어지고 숨어야 하는 이 계절엔
나의 뜨거운 노래는
여기 언 땅에 깊이 묻으리.

아아, 나의 이름은 나의 노래.
목숨보다 귀하고 높은 것.
마침내 비굴한 목숨은
눈을 에이고, 땅바닥 옥에
무쇠 연자를 돌릴지라도
나의 노래는
비도(非道)를 치레하기에 앗기지는 않으리.

들어 보라.
이 거짓의 거리에서 물결쳐 오는
뭇 구호와 빈 찬양의 헛한 울림을.
모두가 영혼을 팔아 예복을 입고
소리 맞춰 목청 뽑을지라도
여기 진실은 고독히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를 통해 영구집권을 획책했던 이승만 독재 정권 말기에 쓴 시다.
당시의 집권당이었던 자유당이 집권연장을 위하여 경찰과 공무원, 심지어 조직 폭력배까지 동원하여 이승만과 이기붕을 대통령과 부통령으로 당선시켰던 3.15 부정선거. 결국 4.19 혁명을 일으켜서 독재 권력을 무너뜨렸지만, 명백한 부정선거를 두고 보지 않았던 시민들은 피의 값을 치렀다.

2014년 甲午年 靑馬의 해.
시인 청마 유치환의 시로 한 해를 시작하다.
국정원 여론 조작이 선거 개입임에 의심할 여지 없는 시절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