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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3.11, 오늘 이 영화 어때요?


후쿠시마 내 사랑(Grüße aus Fukushima) 2016

 

<후쿠시마 내 사랑> 제목만으로는 별로 끌리지 않았던 영화였다. 가 본 적 없는 일본의 후쿠시마. 아는 것이라곤 7년 전 원전 사고뿐이다. 그나마 그 사건이 후쿠시마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하였고, 원자력이 후쿠시마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 시대 인류의 문제임을 인식하도록 했었다. 그런 후쿠시마에 사랑이라니. 폐허가 된 후쿠시마에 잔해처럼 남은 사랑을 말하는 것일지, 원전 사고로 사라져버린 마을처럼 지금은 사라진 사랑의 흔적이라도 추억하려는 것일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일본 사람이 아닌 독일 감독이 만든 영화였다. 이미 7년이 되었더라도 일본에서 있었던 가장 비극적인 재난을 외국인은 어떻게 보았을지,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게다가 여성 감독(도리스 도리에)의 여성 주인공들이다. 영화적 비평에 앞서 일단 봐주어야 하는 이유다. 편향적 선입견이라도 그렇다.


쓰나미가 몰려오던 당시 자기 집의 나무 위로 대피하던 중 제자가 죽어 그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토미와 실연의 아픔 때문에 자살기도까지 했던 마리는 원전사고로 폐허가 된 후쿠시마의 사토미 집에서 함께 지낸다. 사람들의 만류와 매일 밤 악몽을 꾸면서도 그 집을 떠나지 않는 사토미. 역시 매일 밤 쓰나미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환영에 시달리고 낯선 곳의 이질적 존재임을 느끼면서도 피난민들을 위해 광대 노릇까지 하는 마리. 그들은 함께 지내며 서로가 가진 아픔을 공유한다. 실연의 아픔을 재난의 아픔보다 가볍게 여기지도 않는다. 사람이 절망하고 사는 것이 괴로운 수많은 이유와 크고작은 상처를 이해한다. 억지 위로를 남발하지도 않는다. 그저 곁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차를 마시며 명상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든지 게이샤 수업을 받는다던지 하면서. 그러면서 알아간다. 폐허가 된 집을 아무리 쓸고 닦아도 원상복구 되기 힘든 것처럼 상처를 완전히 치유하지 못 한다는 것을. 괴로운 과거를 완전히 지우는 대신 오히려 기억하고 새로운 삶의 의지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후쿠시마를 떠나는 마리는 사토미가 자살시도했던 나뭇가지 하나만 베어내고 그 나무를 그대로 두었는지 모른다.


7년 전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우리에게도 특별한 오늘. 원자력 에너지가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 하는 기본적 물음으로 시작해서 인간을 위한다는 핵개발이 도리어 인간을 위협하고 있다는 현실 자각이 당연하다. 그에 그치지 않고 더는 미룰 수 없는 탈핵의 구체적 방안까지 논의하며 행동에 옮길 때다. 그런 시점에서 이 영화는 조금 부족할 수 있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너무나 큰 재앙이었음을 기억하게 했다. 그 상처와 기억 위에서 다시 살아가기를 애쓰는 사람들. 어찌 후쿠시마 사람들만의 일이랴. 우리는 지금 그 대단한 원자력으로 우리의 일상을 위협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