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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읽기,그리기, 보기

 

무더웠던 여름, 어느 때보다도 많은 글을 읽고 영화를 본 거 같다. 일에 필요해서도 그랬지만, 터럭만큼이라도 지적, 문화적 소양을 길러 보고픈 바람에서도 그랬고, 어쩌다 드러날지 모르는 무식의 순간을 조금이나마 미루어 보고 싶은 궁여지책이기도 했다. 공부하면 할수록 할 공부가 생긴다더니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관련된 책들이 튀어나와서 읽을거리를 내내 들고 다니는데도 책상 위에 봐야 할 것들이 쌓였다. 이 대목에서 살짝 비극적(?)인 요소가 돌출된다. 쇠퇴해가는 내 기억력과 집중력이 맘처럼 지지하고 지원하지 못한다는 거. 특히, 필요하거나 중요한 대목은 그 즉시 적어놓지 않으면 헷갈리거나 잊어버리기 십상이라 메모하고 반복해서  읽다 보니 진도에 속력을 내지 못한다. 머리나 가슴이나 똑같이 딱딱하게 굳는 거 같다. 자글자글 노화하는 피부세포처럼 뇌세포도 맥없이 늙어가는지 이해가 뚱뚱한 엉덩이처럼 굼뜨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읽고 보고 감상하는 행위가 무지, 무식의 폐허를 채워주려나? 


그런데 글은 많이 못 썼다. 일상을 끄적끄적하는 블로그에조차 포스팅이 파리 날렸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는 표어를 걸어둔 <이야기너머>에 드나들기 시작했음에도 그랬다. 오히려 전과 달리 자유롭고 편하게 주절거리듯 쓰던 글들조차 쉽지 않았다. 글에 대한 책임이 부담과 함께 왔나보다. 앞으로는 성격이 다르고 목적이 다르고 쓰임이 다른 글들을 동시에 써야 할텐데 얼른 몸이 풀렸으면 좋겠다.
그림은 더 하다. 스케치북에 데생만이라도 했던 때가 언제였더라? 굳어가는 물감과 먼지를 뒤집어쓴 캔버스가 뒹구는 방을 차마 치우지도 못한 채 눈길, 마음길만큼 손길이 가지 못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런저런 구상은 떠오른다. 머릿속에서 맴맴 도는 구상에 손보다 마음이 급하다.


미술관 대신 영화관에 더 자주 가기는 이번 여름이 처음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자주 갈 수밖에 없는 인사동과 삼청동도 그렇고 참새방앗간처럼 드나들던 현대미술관에도 전시보다는 다른 일들로 갔었다. 알림 설정되어있는 아틀리에 소식 앱은 무색해졌다. 대신 극장에서 어슬렁거린 시간이 많았다. 영화보기라면 쿵짝이 맞는 두 사람 때문에 집에서도 오래된 DVD를 뒤적거려 '다시보기' 했다. 


올 여름엔 그렇게 읽기, 쓰기, 그리기, 보기를 했다. 그러면서 여름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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