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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그녀들 이야기

 

'아줌마'들의 이야기를 취재하고 채록한 걸 재구성해서 책으로 낼 거란다. 그냥 아무 아줌마들은 아니다. 평범한 일상에 묻혀 살지만 꿈을 져버리지 않고 숨겨진 열정을 발산하고자 하는 아줌마들이다. 새로운 도전과 시도로 '연극'을 선택한 그녀들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굳이 책으로 엮고자 하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일단 이야기의주인공인 아줌마들이 연극을 통해 변화하고 체험한 바를 남기는 기록이 될 것이다. 기록을 남기는 일. 그게 무슨 의미가 있고 가치가 되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건 '아줌마'라는 호칭에 은근슬쩍 아줌마를 폄하하는 의미를 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내'와 '엄마'에 충실하느라 자아를 잊고 살았던 일상이라고 그 삶이 사소하고 하찮지 않다. 하찮기는커녕 좀 보태자면 아줌마는 사회구성의 에너지 기반이다. 더구나 일상에 만족하지 않고 문화체험 활동이라는 건강한 일탈을 통해 자기 생활의 새로운 장을 만들어 보겠다는 결심을 한 그녀들은 용감하다. 모르긴 해도 그녀들은 단원모집 공고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뭔가 술렁이는 마음의 동요를 느꼈을 것이다. 밥을 하다가 문득, 빨래를 널다가 얼핏, 바쁘게 직장을 오가는 버스 안에서 무심히 창 밖을 내다보다가 '나도 한 번 해볼까?'를 고민했을지 모른다. 남편이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하겠다거나 아이가 진로를 바꾸겠다는 폭탄선언도 아닌데 고민끝에 결심을 굳히고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양해를 구했을지도. 용기를 내어 지원서를 쓰면서 평소 연극에 관심을 갖고 좋아했지만 자신의 숨겨진 열정이 그를 통해 발산되고, 또 재미있을지 의심쩍어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 어떤 경험이 될 지 설렘이 더 크지 않았을까? 저마다 참여하게 된 동기는 다르겠지만, 각자의 이유를 품고 모인 첫 단계는 같다.

그렇게 시작해서 꿈의 무대를 실현하기까지. 교육받고 연습하고 준비하고 공연을 치르면서 우여곡절도 있을 테고 즐겁기도 할 테고 새롭게 깨닫고 터득하는 바도 있을 테다. 8~9개월에 걸친 실제 진행 과정에도 희노애락의 일면이 녹아들 것이다. 변화하는 그녀들. 그 변화가 크든 작든 그녀들의 삶에 나름의 가치가 있는 추억으로 남아서 두고두고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그러니... 이 모든걸 기록하는 일이 어찌 무의미하단 말인가. 이야기의 주인공인 그녀들조차 아직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거 같지만 그 이야기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 빨래통에 아무렇게나 벗어 던진 빨랫감이나 매일같이 쓸고 닦아도 집 안 구석 어딘가에 쌓인 먼지같은 일상이 아닌, 몸 부대끼고 맘 쓰며 살아온 삶의 이야기. 다시 찾은 꿈 이야기. 나는 그에 귀를 기울이며 기록하는 일로 동참하게 되었다.  

기록의 의미만 있는 건 아니다. 공연참여 프로젝트에 참여한 그녀들의 이야기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일상 속에서 문화예술을 즐기고 자기 삶에 도전을 시도하는 일로 퍼지기를 바라는 의미도 있다. 다른 사람의 다른 삶이라도 자극이 되고 동기가 되는 일. 책은 그 역할을 할 것이다. 그 첫 작업을 내가 한다.

이렇게 문화예술재단에서 진행하는 공연 참여 프로젝트를 석 달째 취재하고 있다. <엄마들의 유쾌한 반란>이라는 타이틀에서 대략 짐작 되듯이 엄마들이 일상으로부터의 반란(?)을 통해 즐겁게 자아를 회복하도록 하는 의도다. 가서 보니 엄마와 주부라는 공통점 외에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전업주부도 있고 직업주부도 있고 전직 연극배우 경험자도 있고 그저 연극이 좋아서 온 사람도 있고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전혀 새로운 도전으로 연극을 해보려는 사람도 있다. 그들이 모여 교육 프로그램의 전반에 참여해서 최종의 무대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기록으로 담아 자료화하는 것이 내 임무다. 요즘 하는 일 중에 가장 르포에 가까울 뿐더러 나의 르포 데뷔작이다. 그러니 공연참여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아줌마들만이 아니라 나 역시 새로운 시도이자 도전이고 전환이 될 기회다.
12월 쯤 프로그램에 참여한 그녀들이 만든 무대의 막이 오를 때, 또 다른 방식으로 일하며 배운 나는 어떻게 변화할까? 단지 경험 하나를 보탠 변화일까, 진화(進化)할까?  하루 다섯 시간가량 고를 틈 없이 연속 취재하고, 원고 정리하느라 하루 꼬박 걸리고, 딱딱히 굳은 머리 굴려 가며 애쓴 보람이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