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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문상

 

서울 변두리, 허름한 동네 병원의 장례식장은 썰렁했다. 문상객이 별로 없는 낮이라 그랬을까? 가족, 친지처럼 보이는 사람들만 몇 있을 뿐이었다. 장례식장에 갈 때마다 과시와 낭비라고 생각했던 화환 하나 없는 게 그렇게 쓸쓸할 줄이야. 두리번거리며 들어서는 나를 그녀가 먼저 발견하고 아는 체를 했다. 셔츠 위에 덧입은 검은 상복이 헐렁하도록 마르고 초췌한 그녀. 나를 언니라 부르는 나이의 그녀에게 이번이 세 번째 초상이다. 한창나이에 갑작스럽게 발병하고 딱 일 년 만에 세상을 떠난 그녀의 남편은 우리 부부의 친구이기도 했다. 남편이 떠난 얼마후 7년간 거동 못 하신 채 병상에 계시던 그녀의 엄마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오래도록 엄마를 병구완하시던 중에 암 판정을 받으셨던 아버지가 엄마 돌아가신 후 몇 달 만에 따라가셨다. 1년 사이에 남편과 부모님을 모두 떠나 보내며 한 번 치르기도 힘든 큰일을 몇 달 간격으로 세 번 치른 그녀가 반가운 손님이라도 맞듯 내 손을 잡았다.

몇 달 전 그녀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뵙고 인사했던 그녀의 아버지를 이번에는 영정 사진으로 뵙고 인사했다. 오랜 병에 효자 없다는데, 7년간 당신 혼자 도맡아 보살핀 아내의 장례를 치르시고 마치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당신도 이생을 떠나셨다. 병 든 육신을 감춘 사진 속 표정은 평안해 보였다. 선한 인상에 살짝 미소를 머금은 고인의 사진 앞에 국화 한 송이를 놓았다. 그러고 나와서 그녀와 마주 앉았다. 죽음은 오히려 덤덤하고 삶이 시름이라는 그녀와 앞으로 살아갈 얘기를 했다.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삶의 길을 찾았다. 그게 위로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직 한창 클 나이의 두 아들을 데리고 여린 그녀가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가 안타까웠다. 그녀와 처음 만났던 이십 대 초반엔 우리 모두 다 결혼도 않고, 아이도 없었던 시절. 그때 우리가 그리던 앞날에 오늘 같은 날은 없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서가 아니라 미처 몰라서 상상할 수 없었겠지만, 아무튼 몰랐다. 그러니 생로병사, 뻔한 인생사라 하면서도 그 일들을 벼락같이 맞는 인간이 미련한 거겠지.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알아도 알 수 없었던 일을 하나하나 몸으로 겪으며 성숙인지 체념인지 모를 나잇살을 먹어가고 있다. 그녀도,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