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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원전 공포

마을 전체가 둥둥 떠다니고 물 빠진 도시는 쓰레기더미다. 그 자리에서 수천 명의 시신이 나왔다는 뉴스가 사실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참혹하다. 누구 말처럼 재난영화에나 나올 법한 장면이 이웃 나라의 현실이다. 지진 뉴스가 나온 지 서너 시간 지났을 무렵에 도쿄 사는 친구와 통화했다. 통신두절이라는데 될까 안될까 걱정하며 전화번호를 눌렀는데 건너편에서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진 발생 얼마 지나지 않은 후라 내선은 불통 상태이고 인터넷 전화만 살아있어 그나마 연락이 되었다. 자기 사는 도쿄가 지진과 쓰나미의 직접적인 피해지역은 아니고 어차피 올여름엔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올 예정이었는데, 하루빨리 가족과 친구들 있는 곳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친구. 안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에 살면서 지진이나 자연재해로부터 대비하고 침착한 사회구조와 시민의식을 봐왔다는데 이번 상황은 충격적이란다. 안 그럴 수 있나. 참사 그 자체던데. 통화했던 그 날은 원전 폭발 전이었는데도 말이다. 


쓰나미의 위력도 어마어마하지만 원전 폭발은 그에 못지않은 공포다. 일본이 원전 일류 선진국이라서 더 그렇다. 인류문명의 최대 과학기술 발전이 바로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는 거 아닌가. 원자력이라는 에너지원이 얼마만 한 경제적 가치와 가공할 무기로서의 위력을 갖는지 모르지만, 세계는 이미 핵 공포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다시금 '핵과 인류의 미래가 과연 양립할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러 나라들이 원전에 대한 비중을 높이고 있다고 하나 이번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새로운 사고전환의 계기가 될 것이다. 이 상황에 아랍에미리트의 원전 비즈니스에 열을 올린다는게 말이 되나? '우린 달라', '안전하게 통제할 수 있어'라는 오만을 자신감으로 착각해선 안 될 일이다. 이 와중에 아랍에미리트에서 수출이익에 매진하며 전세계의 관심과 각성을 외면하는 이나라 권력자들의 뇌구조를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