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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하려다 만 이야기





아일랜드에 간다길래 짐 라킨을 아느냐고 물으려다 말았다. 아일랜드의 유명한 노동조합 지도자 짐 라킨. 더블린 시내 한복판에 그의 동상이 있다던데 그냥 지나치지말고 사진 한 장 찍어오라고 하려다 말았다. 광화문 한복판에 위압적으로 들어앉힌 세종대왕상과 어떻게 다른지 둘러보라고 하려다 말았다. 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문화예술과 슬픈 역사를 묻어두지 않고 가까이 현실긍정의 힘으로 어떻게 전환시켰으며 경제불황을 이겨낸 자축을 어떻게 즐기는지도 세심히 보라고 하려다 말았다. 짐 라킨도 항구도시 리버플 출신이고 항만노조의 파업운동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다는데 부산 영도의 조선소 크레인에서 8달 동안 버티고 있는 김진숙도 비슷한 부분이 있지않으냐는 얘기를 그 젊은이에게 할까 말까 하다가, 말았다.


대학등록금 1천만 원, 청년실업 100만 명 시대. 그 가운데는 전문대졸 이상이 40%, 대학원졸 이상의 고학력 실업자도 10%이상을  차지한다는 척박한 현실. 아일랜드로의 단기유학을 준비한다는 그 청년이 꿈 꾸는 미래는 무엇일까?
취업인구 70% 가까이 비정규직, 파견직, 파트타이머, 계약직으로 언제 일터를 잃을 지 모르는 상시고용불안정 상태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 청년의 비젼은 어떻게 펼쳐질까?  
20여 년 전 군사독재 시절에 돌멩이를 품고 다니며 20대를 보낸 우리세대도 그랬지만 20여년이 흐른 지금의 청년들에게도 결코 녹록치 않은 현실이다. 당장의 알바와 스펙이 급하고, 어학연수나 워킹홀리데이는 하나의 방편이든 일종의 도피이든 당연한 코스처럼 되어버렸으나 여전히 불안한 미래에 구군분투하는 요즘의 대학생들. 그들에게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정책 속에서 제도적 해결 없이는 어떤 노력도 부질없다고 선배로서 당당히 말 할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한다.


서울의 4차 희망버스 집결지로 가는 길, 주말의 도심에서 분주히 오가는 젊은이들이 스쳐 지나간다. 겉으로는 번드르하지만 역시 대다수가 비정규직일 것이다. 그들은 알까? 고단한 땀과 찌든 때로 얼룩진 작업복의 노동자들,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외치는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이라는 것을.


후텁하게 더운 늦여름 밤, 청계천에선 통신상태가 좋지않아 부산 영도 조선소의 크레인 위에서 보내오는 김진숙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웃는 그의 얼굴은 선명하다. 마지막 인사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의 구호는 힘차다. 부디 무사히 내려와야 할텐데. 가슴이 아프다. 

사진출처 : 민중의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