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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비 오는 날의 음악

 

과감하다 못해 거칠고 포효하는 듯한 사운드의 음악을 즐겨 듣던 한때. 그 고딩시절이 벌써 수십 년 전이라니 도대체 내가 얼마나 늙은 건가. 정말 까마득하다.  
특정 음악을 밀도 있게 좋아했다기보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들리는 대로 듣는 편이었고, 록이나 메탈도 일종의 호기심으로 즐겼다.  그러다가 나보다 훨씬 메탈 음악에 빠져있던 한 친구와 가까워지면서 점차 그 매력을 알아갔다. 그 친구와 딥퍼플, 레드 제플린, 블랙사바스의 브리티시 하드락을 들었고 헤비메탈 음악을 대표하던 유라이어 힙도 알게 되었다. LP음반을 테이프에 재녹음해서 마이마이에 넣고 다니며 이어폰을 끼고 볼륨을 있는 대로 높여서 들을 때면 누가 불러도 알아채지 못했었다. 반항적이고 이탈적이라 더 멋지던, 대부분의 주위 사람들은 인상 찌푸리고 꺼려하던 음악이 그 친구와의 공통 관심사였다. 그 친구와 분명 얘기도 했을 텐데, 그건 기억나지 않는다. 함께 들었던 음악들만 기억난다.

'추억이란 세월과 함께 멀어져가는 강물이 아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숱한 사연을 계기로 다시 되살아나는 것이다.' 라던 신영복 선생님의 글은 뜬금없이 록과 메탈 음악을 듣던 중에도 적용된다. 내가 얼마나 늙었는지를 새삼 더듬게 하는 오래전의 그 음악, 그 친구가 문득 떠오른 것은 오늘 아침 라디오에서 들려오던 유라이어힙의 <Rain> 때문이니 말이다. 
습관대로 아침 식사를 준비하며 틀었던 라디오에선 비가 오는 날씨 때문에 비와 관련된 음악들이 주로 나왔는데, 조용한 피아노 전주에 이어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식사 준비로 산만한 내 귀를 잡아당겼다. 유라이어힙의 보컬 데이비드 바이런의 목소리로 듣는 Rain. 역시나 이 노래가 비 오는 날의 선곡 1순위구나!  
프로그래시브한 록과 메탈을 하던 유라이어 힙의 음악도 대체로는 머리가 흔들흔들할 정도로 요란하고 정신없는 음악이다. 그런데 이렇게 잔잔하고 서정적인 노래도 있다. 어찌 보면 난 전형적인 록보다 간간이 섞여 있던 감성적인 록발라드를 더 좋아했던 거 같다. 유라이어힙의 그 많은 곡들 중에 Rain만 기억하니...
오랜만에 듣는 유라이어힙이 반가워서 유투브로 그들의 음악을 더 들었다. <July Morning>도 귀에 꽂힌다. 후반부의 기타연주는 정말 환상적이다. 아니, 요즘 애들 말로 '쩐다'고 해야 할 거 같다. 살짝 불량끼도 섞어서. 밴드에선 역시 기타의 비중이 크다. 70년대에 나온 음악이고 내가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80년대인데, 아직껏 그 음악이 매력적이라 느껴진다는 것은 20여 년이 훨씬 넘어 30년 가까이 흘러서도 내가 아직 젊다는 것일까, 철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프로그래시브한 음악을 듣던 옛날보다도 오히려 프로그래시브하지 못해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