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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새로운 지평

이미 진행되고 있는 그 일의 밑그림이 어떤 것인지, 나는 어느 대목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아야 하는지 아직 모른다. 일단 그곳에서 손을 내밀었지만, 결국 내 발로 그 안에 들어선 것이니 그저 멀리 두고 바라보는 관객이나 주문제작에 급급한 수동형이 아니라 직접 붓을 들고 밑그림을 구체적으로 완성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건 내게 던져진 새 판이 맞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지평으로 진입한 거다. 그래서 새로운 만남이 새로운 나눔을 만들어 갈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인간의 본성이란 자신과 동시대 사람들의 완성을 위해, 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일할 때만 자기의 완성을 달성할 수 있게끔 되어있다.' 맑스가 열일곱 살 때 남긴 문장이다. 사적 행복과 공적 행복 사이에 공통관계가 있는 듯 없는 듯 흐릿한 것이 아니라 인류의 행복과 자아의 완성이 일치할 때 비로소 개인의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 말이다. 열열곱 살의 맑스가 새로운 지평을 맞은 내 발목에 힘을 주고 등을 떠밀어준다.

 

눈가에 주름을 만드는 미소는 천진한 아이같이 귀여우나 치밀하고 섬세한 면이 느껴지는 김 교수님. 첫 일 시작에 앞서 사전 오리엔테이션인지 트레이닝인지로 권유해주신 책의 서문에 그런 글이 있었다.
'Aristotle(1976)는 고결하고 윤리적인 행동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간에 최선을 다해 잘하는 것을 뜻한다고 하였다.'
고결하고 윤리적인 행동이라... 한낱 중생이 그게 가능한가하는 의문이 들며 거리가 먼 단어인듯 싶으나, 사실 어떤 특정 서브젝트를 연구하는 자들만이 아니라 무언가를 하는 누구에게나 가장 단순한 기본 근성이어야 할 개념이 아닐까? 최선을 다해 잘하는 것. 어느 누구라도 하찮은 인생이 없으니 하나하나 삶의 이야기를 모으는 첫 번째 일에서부터 개념이 행동화되어야 할 텐데. 한낱 중생이지만 부디 고결하고 윤리적인 행동을 실현해야 할 텐데.


새로 만난 다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