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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분당과 밀양 사이

얼마 전 분당에 사는 친구는 어수선한 동네 상황을 전했다.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중심 상권인데다 주거지역이 인접해 학교가 많아 아이들이 수시로 오가는 곳에 보호관찰소가 들어선 것이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하룻밤 새 몰래. 친구는 물론이고 인근 거주 학부모들은 화들짝 놀랐고 동네는 발칵 뒤집혔다. 가장 먼저 아이들의 안전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주민 반발을 예상했는지 새벽녘 기습 설치에 분개했다. 주민 편의 시설도 아닌 보호관찰소를 번화가 한복판에 들어앉힐 수 있는 거냐, 이거 어디 애들을 학교나 학원에 맘 놓고 보낼 수가 있겠냐, 게다가 그 동네 임대료가 얼마인데 굳이 비싼 월세 내며 거기에 설치해야 하는 거냐, 그건 또 어디서 나오냐 우리 세금 아니냐……. 친구는 처한 상황 이야기를 폭포같이 쏟아냈다. 분당 아줌마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흰옷 입고 마스크 쓴 채 시위하던 기사 그대로였다. 또 친구는 다른 지역 사람들이 '님비'라고 말하는 것을 신경 쓰는 듯했다. 내 지역은 안되고 다른 지역은 된다는 말이 아니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반대할 수밖에 없는 근거를 대며 혹시나 지역 이기주의로 비칠지 모르는 걱정을 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과연 국민을 위한 국가기관인지를 물으며 졸속 행정을 비난했다. '정치는 모르고 전혀 정치적인 사람이 아닌데 세상일이 이렇게 돌아가다니….'라며 기막혀했다. 거리에서 단체 항의 집회 한 번 하고 정치를 아는(?) 사람이나 하는 정치적 발언을 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친구를 비롯한 그곳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대신 거리에 나와 철회요구 단체 행동을 했던 걸 충분히 이해한다. 잠깐 서 있는 사이에도 전자팔찌 찬 사람들과 문신남들을 보았다니, 애나 어른이나 번화가인들 어디 무서워 다닐 수가 있겠나. 보호관찰소를 그렇게 유동인구 많은 지역에 설치하는 건 타지역 사람으로도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기에 묻고 싶었다. 시위? 정치를 알고 정치적인 사람들만 하는 걸 아줌마들이 애들과 가족 걱정으로 거리에 나와 앉아있으면 안 되는 거야? 법무부 관할 보호관찰소 옮겨 달라는 게 정치적 발언이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현 정부의 처사에 반대 뜻을 표명하는 건 정치야? 현실적 문제에 당면한 친구에게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하기도 그렇고 얘기를 너무 확대하는 것 같아서 묻지 않았지만, 친구가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하는 질문들이 내 맘 속에서만 꼬리를 물었다. 구럼비를 보호하고 해군기지 반대하는 강정마을 사람들은 국가 안보 무시하는 걸까? 송전탑 반대하는 밀양 사람들은 국가 전력난은 생각도 않고 보상금 받으려고 수작 부리는 걸까? 그들은 님비일까? 이런 건 정치를 알고 정치적인 사람들만 말해야 하는 걸까?


밀양 송전탑 반대는 8년째 계속되고 있다. 그사이 평생을 농사지으며 땅 하나만 바라보고 사시던 할아버지 한 분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하셨다. 미국 북동부와 캐나다 퀘벡을 잇는 1000Km 거리에 사용되는 송선로를 39.15Km인 밀양 지역에 놓겠다는 정부는 주민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하겠다 하고, 건강도 안전도 위태로운 상태에서 하루하루 시들어가는 삶을 살며 택도 없는 보상금으로 평생 살아온 땅을 포기할 수 없는 밀양 주민들은 국가 폭력에 맞서고 있다. 
765 Kv의 전기가 흐르는 지역에서는 밤에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소음이 심하단다. 당연히 전자파의 양도 엄청나다. 세계 보건 기구 국제암연구소는 고압송전선로에서 발생하는 전자파를 발암 가능 물질(Group2B)로 지정했는데, 한국전력은 발암물질로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국민의 66%가 밀양 주민의 반대 입장에 공감하고 일리 있다는데 모르는 소리 말란다. 송전탑 건설 찬반 문제로 마을 공동체는 붕괴되고 인권침해 문제도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빼꼼히 고개를 치켜드는 색깔론. 새누리당은 송전탑 건설 반대 시위에 '종북 세력'이 가세하고 있다고 한다. 그놈의 만능 키워드 '종북'.


분당 한복판에 기습 설치되었던 성남보호관찰소는 결국 철회되었고 아줌마들은 농성을 풀고 아이들을 다시 학교에 보냈다. 전자파 걱정돼서 컴퓨터나 텔레비전 옆에 선인장 놓아두고 아이들에게 전자레인지 돌아가는 근처에 가지 말라고 이르는 그들도 연일 신문에 오르내리는 밀양 소식을 알고 있겠지? 밀양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향해 설마 님비라 하진 않겠지?